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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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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목회칼럼
김만섭 담임목사 2025.5.23 조회 44

예수님께서는 내면의 자기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떠나 이방인의 땅인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십니다. 아무도 모르게 가셨지만,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신 예수님은 더욱 빛납니다. 그 빛(소문)을 보고(듣고), 이방인 한 여인이 찾아옵니다. 그 여인은 귀신 들린 어린 딸을 고치기 위해 찾아옵니다. 엄마에게 가장 큰 고난은 자녀 고난입니다. 우리도 큰 고난과 절망 속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 나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어떤 소망도 없다는 절망감 가운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간절한 소망 가운데 찾아왔는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 찾아온 이방인 이 여인을 수치스럽게 개처럼 취급하십니다. 우리도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깨닫고, 산 소망 되시는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응답도 없고, 사랑받는 것 같지도 않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낙심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방인 이 여인은 주님께 주님, 맞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이 개와 같은 존재, 큰 죄인이라고 인정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낮고 처한 몸으로 오신 겸손과 온유를 아는 것처럼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인지 겸손히 인정합니다. 그리고 간절함을 넘는 절박함으로 주님께 간구합니다. “주님 옳습니다. 그러나 상 아래 개들도 주인의 자녀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여인은 오직 주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직면하고 도망가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부스러기 은혜면 충분하다고 믿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이고, 수치의 자리까지 낮아져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100% 죄인이기에 아무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칭찬하십니다. 세속사는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고, 구속사는 주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속사는 우리가 개와 같은 존재라는 수치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죄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또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이 수치의 고백이 주님이 칭찬하시는 큰 믿음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세상이 원하는 금빛 십자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초라한 나무 십자가입니다. 세상이 싫어하는 수치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수치의 자리가 영광의 자리가 되고, 응답과 구원의 자리가 됩니다. 지금 우리가 갈망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지금 우리는 주님만 옳습니다.’라며 부스러기 은혜만이라도 주시기를 구합니까? 아니면, 내가 옳다고 원망하고 불평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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